유치원 대신 선교원을 2년 다닌 것 외엔 교회와는 거리가 먼 유년시절을 보냈다. 종교라는 것에 심각하게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고, 가끔씩 절에 가시는 엄마를 보며 자연스레 누가 종교가 뭐냐고 물어보면 불교 혹은 무교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평범하고 착하신 부모님과 오빠 한 명에 막내딸로 어려움 없이 유년, 학창시절을 보냈고, 세상의 중심은 나라는 오만함으로 그럭저럭 내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매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유난히 어딘가에 얽매이고 간섭 받는 것을 싫어하며 자유로운 것을 좋아하는 내게(그래서 영단어 중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must이다) 결혼생활은 다른 나라에 가서 겪는 일종의 ‘문화충격’과도 같았다. 하고 싶은 것 보다는 해야 할 것들이 많았고 (제사 등의 유교적 관습) 육아 또한 즐기지 못하고 힘들어하여 결혼후유증(?)과 더불어 육아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더군다나 딸 아이를 낳고 돌이 갓 지났을 때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살면서 누군가의 죽음을 처음으로 가까이서 지켜보게 되면서 심신이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그러던 중에 집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우연히 tv에서 누군가가 (후에 그 분이 이어령 교수님이셨다) ‘자기 자신만을 종교인양 믿고 사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라고 하였고 그 말이 내 머리를 치는 것 같았다. 그러면 종교를 가져봐야겠다는 생각에 선택한 것이 친구가 다니고 있던 교회였고 나의 ‘종교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주일 설교말씀은 좋은 말이니까 그럭저럭 좋았고 찬양도 한 번씩 눈물이 나니까 듣기에 좋았다. 막연하게 사람들이 내게 웃어주니까 좋았고 실컷 사람구경을 할 수 있으니까 또 좋았다. 그렇게 그저 좋기만 하였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구원의 확신이라던가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셨다 등의 믿는 자라면 당연히 가져야 생각과 성경말씀에도 반항기가 생겨 믿고는 싶었으나 쉽게 믿어지지가 않아 점점 무늬만 크리스쳔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나님을 봐야 하는데 자꾸만 교회에 오는 사람들을 보게 되고 그들이 실망스러워 나만의 잣대로 그들을 정죄하는 어리석은 생각들을 많이 하였다. 가고싶을 때는 가고 가족 행사나 일이 있으면 당연히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교회를 다니며 점점 매너리즘 빠져 나는 하나님께 자격미달 이구나라는 결론에 도달할 즈음 우연한 기회로 교회를 옮기게 되면서 그곳에서 목사님께 안수기도를 계속 받으며 그분을 통해 조금씩 하나님을 새롭게 알아가게 되었고,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기도하면 반가운 듯 응답을 해 주시는 하나님을 통해 기도의 즐거움도 맛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목사님을 통해 집과 가까운 성일 교회로 오게 되면서 매주 간결하지만 깊이있는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기쁨으로 들으며 이제는 혼자만의 신앙생활이 아닌, 함께하는 믿음의 즐거움도 조심스레 알아가고 있다. 이 또한 놀라운 주님의 예비하심과 역사하심이라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듯 벅차다! 돌이켜보면 2007년 이후로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특이한 체험이나 간증거리가 있지는 않지만 내 안에서는 많은 생각의 변화들이 폭풍처럼 있었고 삶의 프레임도 차츰 바뀌어져 세상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노력중이다. 내 안에 예수님의 사랑이 많아져서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 살면서 많은 간증거리가 생겼으면 좋겠단 욕심도 부려본다. 내게 주어진 삶은 진행형이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천국으로 가는 과정이 매 순간 즐거웠으면 하는 바램이다.
‘교회 다니는 즐거움’을 맛보고 싶어 계속해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친구되기 원함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병상에서 만나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병상의 축복이 있을 것이라는 위로가 이해되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르고, 몸도 마음도 회복이 되면서, 하나님이 저를 부르시는 어떤 강력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예배도 드리지 않고, 성경도, 기도도 하지 않으면서, 엄마의 눈물의 기도를 동냥하며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특히 지난 2년 동안 아름다운 낙원에서 살게 해주시고, 넘치는 사랑을 주시는 귀한 공동체를 만나게 해주셔서, 그 동안 몰랐던 크리스천으로서의 기쁨을 알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한단계 믿음이 성장할 때 입니다. 어떤 성장이든 통증이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도 있지만, 수술대에서 내게 즉시 손 내밀어주셨던, 주님은 절대 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마음을 다잡고, 성경 읽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목소리에 예민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시골 바닷가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살아온 나, 결혼전에즌 교회 근처에도 가 보지도
못한 나,, 고1때 아버지의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대학을 포기하고 3년직장 생활을 하다가
지금 남편을 만나 좀 이른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하자마자 큰애를 임신하면서 친정엄마와 같고, 친언니같은 형님을 따라 처음으로
교회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형님따라 다니기는 했지만 믿음의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집과의 거리도 있었지만,교회 생활을 영 적응 하지 못했다.
그래서 집 근처에 있던 성일교회로 옮기게 되었다.
교회를 옮긴지 얼마 지나,둘째를 임신하게 되었다.
몇년간 불임으로 마음고생하고 있든 차에 너무나 기쁜일이 일어났다.
조금씩 교회에 정도 부치고,구역교제를 통해 믿음이 조금씩 자라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지금까지 왔다....
때론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
이세상에 친정식구하나 없는 나에게는 교회가 나의 친정이라느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나님은 나의 편이시고, 늘 나와 함께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온전한 믿음 생활을 한다고는 할수 없지만 ,,,,
늘 노력하려 한다,,늘 하나님께 바라기만 한 믿음이 아니라, 그에 합당한 댓가
(기도, 묵상,헌신...)를 먼저 드리는 믿음이 진정한 믿음이라 생각한다.
늘 뜨겁고 적극적인 믿음은 아니지만, 꾸준히 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갈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알게 된건 고등학교때였고 이십대초반까진 교회를 왔다갔다 했지만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쭉 하나님을 떠나살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남편도 그렇고 시댁과의 갈등으로 많이 곤고하고 힘들었다.
다툼도 많았고 서로에게 상처도 많이 줬다.
임신도 잘되지 않아 삼년만에 겨우 큰아들을 낳고 사년뒤에 둘째아들이 생겼다.
그러다가 2007년 이웃의 집사님의 인도로 울산감리교회로 출석을 했다.
첫날 집나간 탕자처럼 엉뚱한 곳에서 많이 방황하고 돌고 돌아서 겨우 내집에 온것같은 편안함,하나님을 다시 만나게되어 너무 기쁘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성경책이,설교말씀이 너무 좋았고 찬양부르는것이 즐겁고, 예배를 사모하게 되었다.
주일날 손수건이 없음 안될정도로 눈물이 주체없이 흘렀고, 믿지않는 남편영혼이 불쌍하고,내가 그에게 말로써 많은 상처를 준것같아서 회개기도가 절로 나왔다.
그러다가 교통편이 불편한 관계로 가까운 교회로 옮겼다.
그땐 교회생활이 너무 좋았기에 어느곳이든 상관이 없을것 같았는데 적응이 되지않았다.
설교시간이 지루했고,주일이 다가오는게 싫었다. 남편과 아이들 보기도 그렇고 심적으로 많은 갈등이 생겼다.
많은 고민끝에 이곳 성일교회롤 오게 되었다. 목사님 설교말씀은 좋았지만 워낙에 내성적인 나의 성격탓도 있겠지만 적응기간이 많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 지금의 소중한 목장 식구들이 좋고, 말랐던 눈물을 다시 회복시켜주심 또한 감사하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내안에, 내가 그안에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수 없음이라."는말씀처럼 앞으로도 쭉 죽는 그날까지 주님께 꼭붙어서 많은 열매를 맺을수 있는 제가 되어야겠다고 결단을 합니다. ^^
* 예수님 만나기 전
- 형식적인 크리스찬으로 빠지지 않고 주일을 지키며 급할때 마다 기도하지만 예수님의 존재가 내 삶에 결정적 변화나 영향력을 끼치지는 못함
나 자신이나 다른사람에 대해 판단하고 정죄하기를 좋아하고, 그 판단으로 양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진채 살아감
교만한 모습, 나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지 못함
* 예수님을 만난 계기
- 대학생 시절 트레스디아스라는 수련회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의 체험하고 깨닫게 되면서, 자아상이 많이 변화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임용시험을 공부하면서 마음이 낮아지고, 세상적인 즐거움과도 멀어지면서 하나님을 찾게되고, 성경을 처음으로 읽어가며,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나를 향한 끝없는 사랑과 내 삶을 간섭하심에 겸허히 무릎꿇게 됨.시험엔 낙방했지만..ㅠ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예수님을 만난 이후 삶
- 눈물 마른 사람에서 눈물 마를날 없는 사람이 됨,
삶의 전반에 걸쳐 감사가 충만한 생활,
뜬금없이 찾아오는 가슴 벅차지는 현상,
근원적인 기쁨이 있는 삶,
무엇보다 가장큰 변화는 목사님 지난번 댓글처럼 '자유함', 먼저는 내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정죄하지 않음. 그리고 다른사람에 대한 판단에서도 자유로워짐. 무거운 짐에서 완전 홀가분해짐
하지만...
결혼 후 애들 키우며 말씀도, 기도도, 심지어 주일설교도 제대로 듣지 못하면서, 깊은 영적인 무기력함과 굳어진 마음으로 다시 신앙생활의 침체기가 왔습니다. 차라리 하나님을 만나기 전보다 더 곤고해진 것 같아 마음은 더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그런 저를 아버지 역시 그냥 버려두시지 않으시고, 성일가족반, 또, 예닮반을 통해 다시 굳어진 제 마음밭에 단비같은 귀한 말씀들을 주십니다.
나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이라 같은 실수를 이렇게 여러번 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이렇게 반복해도, 주님 절대 다그치시는 법 없이, 항상 기다려주시고, 또 다시 손잡아 주시니, 이제 다시는 이 손 놓지 않고, 주님 마음 안타깝게 하지 않는 좀 효도하는 자녀가 되어 봐야겠습니다~~^^
신앙간증
초등학교때 교회에다녔었다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주일학교도 같이 졸업했다.
그러다가 사회인이 되었을때 그때가 24살 때였던가 어떤이로부터 하나님이 계신것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때 놀랐었다 어! 이사람 교회다니나 하는 생각과 갑작스럽게 웬 하나님 이 생뚱맞은 질문은뭐지 교회다닐것 같지않은데 ....당황해 하면서 글쎄요50%있는것 같기도하고
50%없는것 같기도하고....그러자 그는 하나님은 계십니다 라고 말하는것이 아닌가 나는 한참이나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던 기억이난다
그로부터 몇달후에 휴거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너무 무섭기도하고 책의 내용에 기가 팍 죽었다 바로 친구에게 나 교회좀데려가줘 라고 했고 그렇게 교회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잘다니면서 예수님에대해 알아가던중 예수전도단 신년 가족 세미나에 같이 가자는 초대에 응하면서 하나님을 만나게 해 달라는 나의 기도에 하나님은 방언으로 응답하셨고 나의 신앙은 견고하게 다져지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가끔씩 하나님을 이해할수 없을때도 있었지만 믿음이 흔들린 적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께서 나에게 슬픔을 주셔서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둡고 추운 겨울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이또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잘 통과하리라 생각한다. 하나님을 입술로 마음으로 원망할수없고 부인할수 없기에 다만 조금 하나님께 시위 중이다 그러나 시위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풀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이정도는 은혜로 덮어 주시고 기다려 주실 것이라 믿는다. 마음이 진정 될때 온전한 감사를 회복시키실 하나님을 믿으며 아멘 입니다.
에닮반 공부를 시작한것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이렇게 간증문을 쓸수 있는것을보니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성민희
댓글 7
현선영 2013.7.25 06:35
유치원 대신 선교원을 2년 다닌 것 외엔 교회와는 거리가 먼 유년시절을 보냈다. 종교라는 것에 심각하게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고, 가끔씩 절에 가시는 엄마를 보며 자연스레 누가 종교가 뭐냐고 물어보면 불교 혹은 무교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평범하고 착하신 부모님과 오빠 한 명에 막내딸로 어려움 없이 유년, 학창시절을 보냈고, 세상의 중심은 나라는 오만함으로 그럭저럭 내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매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유난히 어딘가에 얽매이고 간섭 받는 것을 싫어하며 자유로운 것을 좋아하는 내게(그래서 영단어 중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must이다) 결혼생활은 다른 나라에 가서 겪는 일종의 ‘문화충격’과도 같았다. 하고 싶은 것 보다는 해야 할 것들이 많았고 (제사 등의 유교적 관습) 육아 또한 즐기지 못하고 힘들어하여 결혼후유증(?)과 더불어 육아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더군다나 딸 아이를 낳고 돌이 갓 지났을 때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살면서 누군가의 죽음을 처음으로 가까이서 지켜보게 되면서 심신이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그러던 중에 집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우연히 tv에서 누군가가 (후에 그 분이 이어령 교수님이셨다) ‘자기 자신만을 종교인양 믿고 사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라고 하였고 그 말이 내 머리를 치는 것 같았다. 그러면 종교를 가져봐야겠다는 생각에 선택한 것이 친구가 다니고 있던 교회였고 나의 ‘종교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주일 설교말씀은 좋은 말이니까 그럭저럭 좋았고 찬양도 한 번씩 눈물이 나니까 듣기에 좋았다. 막연하게 사람들이 내게 웃어주니까 좋았고 실컷 사람구경을 할 수 있으니까 또 좋았다. 그렇게 그저 좋기만 하였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구원의 확신이라던가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셨다 등의 믿는 자라면 당연히 가져야 생각과 성경말씀에도 반항기가 생겨 믿고는 싶었으나 쉽게 믿어지지가 않아 점점 무늬만 크리스쳔이 되어가고 있었다.
현선영 2013.7.25 06:35
하나님을 봐야 하는데 자꾸만 교회에 오는 사람들을 보게 되고 그들이 실망스러워 나만의 잣대로 그들을 정죄하는 어리석은 생각들을 많이 하였다. 가고싶을 때는 가고 가족 행사나 일이 있으면 당연히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교회를 다니며 점점 매너리즘 빠져 나는 하나님께 자격미달 이구나라는 결론에 도달할 즈음 우연한 기회로 교회를 옮기게 되면서 그곳에서 목사님께 안수기도를 계속 받으며 그분을 통해 조금씩 하나님을 새롭게 알아가게 되었고,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기도하면 반가운 듯 응답을 해 주시는 하나님을 통해 기도의 즐거움도 맛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목사님을 통해 집과 가까운 성일 교회로 오게 되면서 매주 간결하지만 깊이있는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기쁨으로 들으며 이제는 혼자만의 신앙생활이 아닌, 함께하는 믿음의 즐거움도 조심스레 알아가고 있다. 이 또한 놀라운 주님의 예비하심과 역사하심이라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듯 벅차다! 돌이켜보면 2007년 이후로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특이한 체험이나 간증거리가 있지는 않지만 내 안에서는 많은 생각의 변화들이 폭풍처럼 있었고 삶의 프레임도 차츰 바뀌어져 세상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노력중이다. 내 안에 예수님의 사랑이 많아져서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 살면서 많은 간증거리가 생겼으면 좋겠단 욕심도 부려본다. 내게 주어진 삶은 진행형이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천국으로 가는 과정이 매 순간 즐거웠으면 하는 바램이다.
‘교회 다니는 즐거움’을 맛보고 싶어 계속해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친구되기 원함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윤유선 2013.6.30 01:20
병상에서 만나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병상의 축복이 있을 것이라는 위로가 이해되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르고, 몸도 마음도 회복이 되면서, 하나님이 저를 부르시는 어떤 강력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예배도 드리지 않고, 성경도, 기도도 하지 않으면서, 엄마의 눈물의 기도를 동냥하며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특히 지난 2년 동안 아름다운 낙원에서 살게 해주시고, 넘치는 사랑을 주시는 귀한 공동체를 만나게 해주셔서, 그 동안 몰랐던 크리스천으로서의 기쁨을 알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한단계 믿음이 성장할 때 입니다. 어떤 성장이든 통증이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도 있지만, 수술대에서 내게 즉시 손 내밀어주셨던, 주님은 절대 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마음을 다잡고, 성경 읽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목소리에 예민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최진 2013.6.29 22:48
어느 시골 바닷가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살아온 나, 결혼전에즌 교회 근처에도 가 보지도
못한 나,, 고1때 아버지의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대학을 포기하고 3년직장 생활을 하다가
지금 남편을 만나 좀 이른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하자마자 큰애를 임신하면서 친정엄마와 같고, 친언니같은 형님을 따라 처음으로
교회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형님따라 다니기는 했지만 믿음의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집과의 거리도 있었지만,교회 생활을 영 적응 하지 못했다.
그래서 집 근처에 있던 성일교회로 옮기게 되었다.
교회를 옮긴지 얼마 지나,둘째를 임신하게 되었다.
몇년간 불임으로 마음고생하고 있든 차에 너무나 기쁜일이 일어났다.
조금씩 교회에 정도 부치고,구역교제를 통해 믿음이 조금씩 자라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지금까지 왔다....
때론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
이세상에 친정식구하나 없는 나에게는 교회가 나의 친정이라느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나님은 나의 편이시고, 늘 나와 함께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온전한 믿음 생활을 한다고는 할수 없지만 ,,,,
늘 노력하려 한다,,늘 하나님께 바라기만 한 믿음이 아니라, 그에 합당한 댓가
(기도, 묵상,헌신...)를 먼저 드리는 믿음이 진정한 믿음이라 생각한다.
늘 뜨겁고 적극적인 믿음은 아니지만, 꾸준히 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갈것이다..
신다인 2013.6.29 18:06
신다인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알게 된건 고등학교때였고 이십대초반까진 교회를 왔다갔다 했지만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쭉 하나님을 떠나살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남편도 그렇고 시댁과의 갈등으로 많이 곤고하고 힘들었다.
다툼도 많았고 서로에게 상처도 많이 줬다.
임신도 잘되지 않아 삼년만에 겨우 큰아들을 낳고 사년뒤에 둘째아들이 생겼다.
그러다가 2007년 이웃의 집사님의 인도로 울산감리교회로 출석을 했다.
첫날 집나간 탕자처럼 엉뚱한 곳에서 많이 방황하고 돌고 돌아서 겨우 내집에 온것같은 편안함,하나님을 다시 만나게되어 너무 기쁘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성경책이,설교말씀이 너무 좋았고 찬양부르는것이 즐겁고, 예배를 사모하게 되었다.
주일날 손수건이 없음 안될정도로 눈물이 주체없이 흘렀고, 믿지않는 남편영혼이 불쌍하고,내가 그에게 말로써 많은 상처를 준것같아서 회개기도가 절로 나왔다.
그러다가 교통편이 불편한 관계로 가까운 교회로 옮겼다.
그땐 교회생활이 너무 좋았기에 어느곳이든 상관이 없을것 같았는데 적응이 되지않았다.
설교시간이 지루했고,주일이 다가오는게 싫었다. 남편과 아이들 보기도 그렇고 심적으로 많은 갈등이 생겼다.
많은 고민끝에 이곳 성일교회롤 오게 되었다. 목사님 설교말씀은 좋았지만 워낙에 내성적인 나의 성격탓도 있겠지만 적응기간이 많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 지금의 소중한 목장 식구들이 좋고, 말랐던 눈물을 다시 회복시켜주심 또한 감사하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내안에, 내가 그안에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수 없음이라."는말씀처럼 앞으로도 쭉 죽는 그날까지 주님께 꼭붙어서 많은 열매를 맺을수 있는 제가 되어야겠다고 결단을 합니다. ^^
구인경 2013.6.29 02:42
* 예수님 만나기 전
- 형식적인 크리스찬으로 빠지지 않고 주일을 지키며 급할때 마다 기도하지만 예수님의 존재가 내 삶에 결정적 변화나 영향력을 끼치지는 못함
나 자신이나 다른사람에 대해 판단하고 정죄하기를 좋아하고, 그 판단으로 양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진채 살아감
교만한 모습, 나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지 못함
* 예수님을 만난 계기
- 대학생 시절 트레스디아스라는 수련회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의 체험하고 깨닫게 되면서, 자아상이 많이 변화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임용시험을 공부하면서 마음이 낮아지고, 세상적인 즐거움과도 멀어지면서 하나님을 찾게되고, 성경을 처음으로 읽어가며,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나를 향한 끝없는 사랑과 내 삶을 간섭하심에 겸허히 무릎꿇게 됨.시험엔 낙방했지만..ㅠ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예수님을 만난 이후 삶
- 눈물 마른 사람에서 눈물 마를날 없는 사람이 됨,
삶의 전반에 걸쳐 감사가 충만한 생활,
뜬금없이 찾아오는 가슴 벅차지는 현상,
근원적인 기쁨이 있는 삶,
무엇보다 가장큰 변화는 목사님 지난번 댓글처럼 '자유함', 먼저는 내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정죄하지 않음. 그리고 다른사람에 대한 판단에서도 자유로워짐. 무거운 짐에서 완전 홀가분해짐
하지만...
결혼 후 애들 키우며 말씀도, 기도도, 심지어 주일설교도 제대로 듣지 못하면서, 깊은 영적인 무기력함과 굳어진 마음으로 다시 신앙생활의 침체기가 왔습니다. 차라리 하나님을 만나기 전보다 더 곤고해진 것 같아 마음은 더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그런 저를 아버지 역시 그냥 버려두시지 않으시고, 성일가족반, 또, 예닮반을 통해 다시 굳어진 제 마음밭에 단비같은 귀한 말씀들을 주십니다.
나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이라 같은 실수를 이렇게 여러번 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이렇게 반복해도, 주님 절대 다그치시는 법 없이, 항상 기다려주시고, 또 다시 손잡아 주시니, 이제 다시는 이 손 놓지 않고, 주님 마음 안타깝게 하지 않는 좀 효도하는 자녀가 되어 봐야겠습니다~~^^
이광수 2013.6.27 18:17
신앙간증
초등학교때 교회에다녔었다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주일학교도 같이 졸업했다.
그러다가 사회인이 되었을때 그때가 24살 때였던가 어떤이로부터 하나님이 계신것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때 놀랐었다 어! 이사람 교회다니나 하는 생각과 갑작스럽게 웬 하나님 이 생뚱맞은 질문은뭐지 교회다닐것 같지않은데 ....당황해 하면서 글쎄요50%있는것 같기도하고
50%없는것 같기도하고....그러자 그는 하나님은 계십니다 라고 말하는것이 아닌가 나는 한참이나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던 기억이난다
그로부터 몇달후에 휴거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너무 무섭기도하고 책의 내용에 기가 팍 죽었다 바로 친구에게 나 교회좀데려가줘 라고 했고 그렇게 교회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잘다니면서 예수님에대해 알아가던중 예수전도단 신년 가족 세미나에 같이 가자는 초대에 응하면서 하나님을 만나게 해 달라는 나의 기도에 하나님은 방언으로 응답하셨고 나의 신앙은 견고하게 다져지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가끔씩 하나님을 이해할수 없을때도 있었지만 믿음이 흔들린 적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께서 나에게 슬픔을 주셔서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둡고 추운 겨울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이또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잘 통과하리라 생각한다. 하나님을 입술로 마음으로 원망할수없고 부인할수 없기에 다만 조금 하나님께 시위 중이다 그러나 시위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풀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이정도는 은혜로 덮어 주시고 기다려 주실 것이라 믿는다. 마음이 진정 될때 온전한 감사를 회복시키실 하나님을 믿으며 아멘 입니다.
에닮반 공부를 시작한것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이렇게 간증문을 쓸수 있는것을보니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성민희